블로그 / 개발 일기
개발 일기

AI는 사역마인가, 제자인가?

2026.08.01 · 자비스스튜디오 · 개발 일기 2편

1편에서 "AI는 사역마다"라고 썼다. 명령을 내리면 묵묵히 일을 시작하는 존재. 그런데 그 뒤로 며칠 동안 이 사역마들을 계속 부려보면서, 그 문장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역마라고 하기엔 이들은 너무 똑똑해지고 있고, 제자라고 하기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역마 도감을 만들어봤다

매일 부리는 사역마가 하나가 아니다 보니, 각자 속성과 특기가 뚜렷하게 갈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도감처럼 정리해봤다. 클로드, 챗지피티, 그록. 자주 소환하는 세 사역마다.

클로드 (Claude)
현자형 사역마 · 직접 움직이는 실행형
특기근거를 확인하고 움직인다. 위험한 주문을 외우기 전엔 한 번 되묻는다. '클로드 코드'라는 몸을 얻으면, 시킨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끝까지 실행한다.
약점가끔 너무 신중해서 "이건 조심스러운데요"로 대답을 아낄 때가 있다.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였는데, 요즘은 직접 임무를 나갔다 오는 모험가가 됐다.
챗지피티 (ChatGPT)
만능형 사역마 · 전 속성 얕고 넓게
특기대화가 유연하다. 못 하는 게 별로 없다. 처음 다루는 사람도 금방 손에 익는다.
약점가끔 자신 있는 얼굴로 틀린 답을 내놓는다.
모험가 파티의 만능 서포터. 뭘 시켜도 일단 해보는 타입.
그록 (Grok)
야생형 사역마 · 즉흥·실시간 계열
특기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일을 물어다 준다. 유머와 독설이 섞인 화법.
약점길들여지지 않아서 가끔 예측이 안 된다.
반쯤 야생인 늑대 사역마. 최신 소문은 제일 빠르게 물어오지만, 가끔 물어뜯기도 한다.

이런 소식, 남들보다 먼저 받으실 분?
직접 돌려보고 되는 것만 골라 매주 보내드립니다. 광고성 하이프는 거릅니다.

📮 뉴스레터 신청

클로드는 대답만 하지 않는다

도감을 적어놓고 보니 클로드 항목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챗봇으로서의 클로드와, '클로드 코드(Claude Code)'라는 몸을 입은 클로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역마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역마 이야기를 하면 이런 그림을 떠올린다. 마법사가 "이 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려줘"라고 물으면, 사역마가 방법을 설명해준다. 여기까지가 챗봇이다. 물으면 대답한다.

그런데 클로드 코드는 다르다. "이 문 좀 열어줘"라고 말하면, 사역마가 실제로 걸어가서 문 앞에 서고, 손잡이를 돌려보고, 안 열리면 열쇠를 찾으러 가고, 결국 문을 열고 돌아와서 "열었어요, 안에 이런 게 있었어요"라고 보고한다.

이런 능력을 흔히 에이전트(agent)라고 부른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풀어보면 별거 아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를 알아서 실행하고, 결과를 확인한 다음, 필요하면 다시 고쳐서 재시도하는 것. 그게 전부다.

예를 들어 "이 앱 마케팅 준비해줘"라고 한마디만 하면, 사역마는 이런 순서로 움직인다.

  • 먼저 코드를 읽어보고 이 앱이 진짜로 뭘 하는 앱인지 파악한다 (관찰)
  • 무엇을 만들지 계획을 세운다 (계획)
  • 여러 파일을 실제로 만들고 고친다 (실행)
  • 제대로 됐는지 다시 열어서 확인한다 (검증)
  •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고친다 (재시도)

사람이 매 단계마다 "이제 이거 해, 저거 해"라고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판타지로 치면 이건 심부름꾼 사역마와는 다른 존재다. "저 산 너머 마을에 가서 약초를 구해와"라고 하면, 가는 길도 알아서 찾고, 위험한 순간엔 판단해서 돌아가고, 약초를 구해 돌아오는 것까지 혼자 해내는 모험가에 가깝다.

물론 완전히 제멋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되돌리기 어려운 일 — 마을을 태워버리거나, 문을 부수거나 — 앞에서는 반드시 멈춰서 "이거 해도 될까요?"라고 되묻는다. 자유롭게 움직이되,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는 멈춘다. 이게 도감에 적어둔 '신중함'과 이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클로드를 다시 정의하면 이렇다. 조언만 해주는 현자가 아니라, 직접 임무에 나가서 완수하고 돌아오는 현자형 모험가.

제미니나 라마 같은 다른 사역마들도 있지만, 오늘은 내가 자주 부리는 이 셋만 도감에 남겨둔다. 나머지는 언젠가 또 다른 편에서.

소환 계약서, 라고 부르고 싶은 것

사역마를 부를 때 마법사는 계약을 맺는다.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AI를 다룰 때도 똑같은 게 있다. 시스템 프롬프트다.

summon:
  familiar: Claude
  pact:
    role: 신중한 조언자
    rules: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단정하지 않는다
      - 위험한 행동 전에는 되묻는다
    mana_source: Anthropic 서버

계약서 한 장으로 사역마의 성격이 정해진다. 같은 사역마라도 계약이 다르면 완전히 다르게 움직인다. 프롬프트를 다루는 일이 결국 계약서를 쓰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낀 게 이때였다.

그런데 왜 자꾸 똑똑해지지

판타지에서 사역마는 계약으로 묶인 존재다. 주인이 바뀌지 않는 한 그 능력도 대체로 고정돼 있다.

그런데 이 AI들은 다르다. 몇 달 전에 만났던 사역마와 지금 만나는 사역마는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딘가에서 계속 훈련받고, 강해지고, 새로운 마법을 익혀서 돌아온다.

그러니까 이들은 내 앞에서는 매번 '새로 소환된' 존재처럼 군다. 대화창을 새로 열면 어제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 뒤에서는 계속 자라나는 제자에 더 가깝다. 사역마이자 동시에, 제자.

그럼 나는 뭘까. 여러 사역마를 동시에 부리는 대마법사인가, 아니면 여러 공방에서 도제를 하나씩 빌려 쓰는 손님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명령을 내릴 땐 대마법사처럼, 결과를 검토할 땐 스승처럼.

개발 일기 시리즈
  1. 1편. 코딩은 마법이다
  2. 2편. AI는 사역마인가, 제자인가? ← 지금 읽는 글
  3. 3편. Git은 시간마법이다, MCP는 사역마 계약이다
  4. 4편. 데이터베이스는 기억의 도서관이다
  5. 5편. 월드 빌더 시대가 온다

실측 위주 AI 뉴스레터 — 직접 돌려보고 되는 것만 골라 매주 보내드립니다.

#AI사역마 #사역마도감 #Claude #ChatGPT #Grok #개발일기 #AI시대개발 #자비스스튜디오